마음일까? 몸일까?

 

마음일까? 몸일까?


아내는 허리가 안 좋다. 퇴근 뒤 아내를 태워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온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치료를 받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려는데 차창 밖으로 사람 길에 어디서 낯익은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법 멀리서 뒷모습만 봤는데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OO서당 훈장 성재誠齋 허 선생님이셨다. 제법 오랜만에 뵈었지만 차 안이라 달리 인사를 드릴 수는 없었다.


옆에 앉은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래 여보오! 당신도 저렇게 걸어, 얼마나 시원시원하고 당당하고 활기 차, 저렇게 허리를 펴면 키도 2센티미터는 더 크게 보일거야?” 허 선생님의 걸음걸이를 보고 평소 구부정하게 시선을 발아래에 두고 걷는 내 자세를 고치라고 주문하는 말이다. 허 선생님은 모르긴 몰라도 환갑은 지나신 년세인데, 걷는 자세는 그야말로 보무당당에 직립보행에 두 팔을 크게 휘두르는 것이 초등학교 학생이 체육시간에 걷는 것 같이 하신다. 아마도 향교에 강의를 나가시는 길인 것 같은데 굳이 아내가 거들지 않아도 ‘와! 나도 저렇게 걷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평소 나 스스로도 내 걸음걸이와 상체 자세를 고쳐보려고 노력은 하는 편이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서 습관적으로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고 머리를 세우고 고개를 당겨 보긴 해도 그 뒤부터는 나도 모르게 자세가 풀어지곤 한다. 뒷날 허 선생님 처럼 씩씩하게 걸어보니 왠지 내 걸음이 아닌 듯 어색해지고 금방 보통 때 내 자세로 돌아와 버렸다.


허 선생님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걸을 수 있는 것일까. 안에 있으면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허 선생님은 언제나 겸손하고, 당당하다. 그러면서 허허롭다. 선생님의 마음 씀이 그대로 걷는 자세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나는 별 뾰족한 수 없으면서도 매사 고민형이다. 세상은 언제나 걸러 돌아가고,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속으로 온갖 생각을 뒤섞어 하고, 내 의지와 달리 돌아가는 현실을 답답하게 여긴다. 이런 멍하고 관조적이며 사유적인 내 마음 상태가 걷는 자세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 씀을 바꾸면 걷는 자세도 당당하게 바꿔질까? 마음을 바꿔 먹고 걸어본다. 하지만 잠시 그 때 뿐 마음도 이전 나로 돌아가고, 걸음걸이도 도로 제자리다. 혹시 반대로 겉이 속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걸음을 바꾸면 생각방식이 바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집어치우고 걷는 동작만 신경 쓰고 걸어보니 그것도 오래 못 간다. 마음 변화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과연 몸과 마음 가운데 영향을 주는 것은 어느 쪽일까. 몸도 마음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바꾸고 싶은데, 해묵은 몸과 마음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맑고 밝게 살고 싶은데, 어느 것을 중심으로 다른 것을 바꾸려는 시도는 걸핏하면 실패한다.


절대자유의 경지에 몸과 마음을 놀리는 저 장자莊子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모든 구속과 불만에서 훨훨 날아오르고 술술 흘러가고 싶다. 마음이 그리할 수 있도록 몸을 놀리고, 몸이 그리 놀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할 것 같다.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과 몸 어느 한쪽이 주主가 되고 부副가 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서로 모두 건강하도록 서로 힘을 얻도록 쳐지고 지친 쪽을 북돋워야 할 것 같다.


2009. 11. 3.

by 롱산 | 2009/11/05 09:08 | 잡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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