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3일
입학사정관제, 전략적 접근으론 안 된다
입학사정관제, 전략적 접근으론 안 된다
흔히 학교를 군대에 비유한다. 수위실을 위병소로 교장을 사단장으로 보는 시각으로 학교를 들여다보면 조직, 운영, 관리, 통제 방식이 거의 같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 때 만들어진 근대학교는 전시체제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전체주의를 생활화하고 내면화하는 가장 필요하고 효률적인 단체였다. 그 뒤 산업화 시대,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는 과정에 학교의 군대적 속성은 더 강화되고, 마치 학교는 원래 그런 것, 그래야 학교라며 사람들에게 학교에 대한 그림과 인식을 그렇게 정형화 시키고 말았다.
군대란 곳은 싸움을 준비하는 곳이다. 전략 전술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짜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면에서도 군대와 같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경쟁을 준비하는 곳이다. 경쟁이 뭔가? 싸움이다. 같은 학생이 서로 적이 되어 싸워야 한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려고 학교는 학교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전략전술을 짠다. 교사 학부모 학원들이 흔히 하는 말에 ‘입시전략을 …’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있다. 교육관련자들은 알게 모르게 이미 교육문제를 전투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입시제도나 방식이 바뀌거나 새로 만들어지면 교육관련자들은 저마다 전략을 마련하느라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부산해진다. 요즘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은 입학사정관제다. 이미 매체를 통해 보도도 되었고, 입시학원이나 시청 같은 데서 발 빠르게 설명회 같은 것을 하고 난 한 발 늦은 시점에 교육청에서 교사를 모아 연수회를 열었다. 연수에 다녀 온 교사는 자기 학교로 돌아 와 교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설명회 차원의 연수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공식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전략에 돌입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라는 고지에 얼마나 많은 병사를 어떻게 올릴 것인지를 서로 고민하자는 것이다. 학교와 교육을 지배하는 구조(메커니즘)는 교육학이 아니라 군사학이다.
입학사정관제는 해당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그 대학에서 수학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는 사람을 두어 대학에 들어오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제도다. 사정관 한 사람이 사정해야 할 대상이 5백 명 이상은 될 정도로 사정관이 확보되어 있지도 않은 것은 물론, 사정관의 자질 또한 검증되지 않은 현실에서 이 제도가 일으키는 바람은 거세다. 특목고나 나머지 아이들(일반고 이하) 가운데 점수 좋고 집안 좋은 아이들을 무시험으로 뽑아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앞서기도 한다.
입학사정관제 핵심은 서류전형과 심층면접/토론이다. 학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수능성적, 수학계획서 등이 갖추어야 할 주요 서류다. 학교에서는 어떤 전략을 세우게 될까. 우선 될성부른 아이들을 한 눈에 보이게 모을 것이고, 그 아이들이 가고자 하는 대학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입학사정관제 전형 요강을 분석할 것이다. 교과/비교과 학생부 기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념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자기소개서, 추천서, 수학계획서 등 진술형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는 게 리로울 것인지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돌고 돌아 그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계적 준비와 대응으로 맞춤형 기성품만 량산될 것이다.
교육을 교육론리도 풀지 못하고 군사 전략으로 풀려고 하니 입학사정관제도 끝내 실패하고야 말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공부하려는(대학 가려는) 사람은 많고 받아 줄 사람 수는 정해져 있다는 것 아닌가. 입학사정관제도 이런 문제를 풀려는 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일단 다 갈 수 있도록 받아주는 것은 어떨까. 다 받아 주었다가 해당 대학의 수학능력이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들은 진급을 제한해버리면 안 되나. 그렇게 되면 두 쪽 바람 모두가 받아들여지고 해결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해결하면 될 것을 입학사정관제다 뭐다 해서 끝내 해결할 수 없는 제도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그런데 또 이런 제도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학원과 학교에서는 공학적 접근으로 거기에 맞는 군사학적 전략을 짜고 이를 진학연구라고 하고 앉아 있다. 되지도 않는 제도 제시에 되지도 않는 해결방안으로 다시 쳇바퀴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다른 나라 명문 대학의 성공한 입학사정관제 사례(이런 대학에서는 ‘관찰’ 비중이 크다)가 보여주는 교훈은 입학을 위해 인위적이고 억지적이고 형식적인 모든 ‘허튼 수작’을 그만두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본질적이지 못한 이런저런 대책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오고, 학원이나 학교, 학부모들은 이를 ‘허튼 수작’으로 뚫으려 한다. 특히 학교의 군대적 속성은 이런 문제를 전략적으로 인식하고 대비하게 한다. 학교가 교육적 모색을 하지 않는 한 군대와 다를 바 없다는 오명을 벗기는 어려울 것이다.
2009. 11. 3.
# by | 2009/11/03 11:37 | 잡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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