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7일
《유러피안 드림》3. 아시아를 말하기 전에 우리를 먼저 보자
저자가 안전을 실마리로 삼은 것은 탁견이다. 안전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다. 유럽의 겸손과 아메리카의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은 안전에 대한 인식차를 잘 반영해 준다.
저자는 유럽사람들이 재발견한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락관주의와 자신감, 개인적 책임감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한데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진정 그러한 정신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남는 문제는 우리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아시아 공동체를 넘어 지구 공동체다. 저자는 아시아에서의 공동체 결성의 가능성을 락관하는 편이다. 특히 동양 사상에 응축되어 있는 네트워크적 인식이 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패권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중국과 미국식 자본주의의 총아 일본 대만 한국이 저지르는 인종차별과 인권파괴, 그리고 자원과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고 파괴를 일상적으로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시안 드림은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
또 과거 유산으로서 존재하는 네트워크적 의식을 두고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의 네트워크가 순조로울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 순진한 구석이 있다. 유산은 발견하고 계승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과거 동양인의 인식 방법이자 삶 그 자체였던 네트워크 유기체론은 오늘 유럽 사람들이 발견하고 실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 공동체 정신의 진정한 적자는 바로 유럽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묘하게도 우리가 우리 유산을 계승하려면 유럽적 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좁혀서 우리를 보자. 우리는 아시아의 일국이지만 오랫동안 과학기술만능과 반네트워크적 생활과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다. 이런 현실을 청산하는 작업을 선행하지 않으면 코리안 드림은 아메리칸 드림의 복제품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반인권, 반민주, 반자연에 아무런 량심적 본능적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차별과 차등을 운명적으로 수용하고, 맹목적 성장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을 그대로 두고 네트워크를 상상하는 일은 연목구어다. 그리고 유럽은 특히 서유럽은 이유EU라는 공동체를 결성하기 전에 국가 단위에서 네트워크를 작동시키고 있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등고자비라고 했다. 작은 단위에서 실천이 따르지 않는데 큰 그물이 완성될 리 없다.
그러나 또한 꿈은 꾸는 자의 몫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꿈은 험난하지만 가야 할 길이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꿈을 불가능한 상상으로 여기는 것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수 가지지 못한 자가 감당해야 하는 상시적 불안으로 유지되는 사회는 분명 나쁜 사회다. 나쁜 사회는 꿈을 박탈해 버린다. 꿈은 내 안과의 싸움에서 출발한다.
2009. 7. 7.
# by | 2009/07/07 10:41 | 잡문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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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고 같은 꿈을 꿈꾸며 이야기하는 일, 참 행복한 일입니다.
현실과 꿈은 아직 멀지만
가슴속 꿈을 가꾸며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봅시다.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과 연대의 힘으로 세상은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