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5일
한글 창제와 보급, 그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한글 창제와 보급, 그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김슬옹/아이세움)을 읽고
세계언어학자가 모여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익히기 쉬운 글이라 칭탄한 문자가 한글이라는 것, 그래서 세계문맹퇴치자에게 주는 상 이름도 한글을 만든 왕의 묘호를 따서 세종상이라 한다는 것, 문자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무리에게 문자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기호(알파벳)가 한글이라는 것은 세계 최고문자가 된 한글의 위상을 말해주는 증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리고 어리석게도 세종의 후예는 한글의 값어치를 모르고 남의 떡만 쳐다보고 있다. 그 가엾던 백성들은 이제 립신출세하고 돈벌려는 야욕으로 영어를 나랏말 우에 떠받들고 있다. 왕조시대에 한문이 그랬듯 영어가 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자를 넘어 말까지 내버리고 있으니 저승의 세종이 편안히 계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성들이 이렇게 똑똑해졌으니 세종의 측은지심은 위로가 되셨는지 모르겠다.
비록 유교질서 안에서라는 제한이 따르긴 했어도, 세종은 한글 창제를 통해 우민의 불쌍한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는 가식 없는 순정한 한글 창제 동기다. 그런데 한글이 상용화 된 지금 더욱 어려워지는 인민 삶의 수준과 갈수록 깊어지는 우민화를 지켜보며 대왕의 소박하고 렬정적인 애민의식을 가엾게 느끼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까. 한글은 깨치게 되었지만 나아가 영어도 우리 말글 이상으로 애착을 가지게 되었지만 억울한 인민, 소외된 인민, 불안한 인민, 불쌍한 인민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한글은 창제되었지만 창제 목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는 역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역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 인민의 행복은 글자가 아니라 지배권력의 속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세종 당대에 상용화되었다 하더라도 세종의 측은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 어려운 한문을 온 인민이 류창하게 쓰게 되었다하더라도 세종의 근심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나는 한문상용을 반대하지만 최만리 상소문에서 단장취의하여 인민이 한글을 알게 되고 공문서가 한글로 작성된다 해도 인민의 삶이 질곡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시대와 리념의 한계를 무시한다면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편리하게 해주는 데는 문자의 창제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만리가 한글창제를 반대한 것은 사대적 자기검열에 따른 내숭과 엄살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이 견해는 차라리 권자의 자신감을 솔직하게 드러낸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층인민의 먹고 살길을 막고, 언로를 막고, 생각과 사상을 억압한다면, 또 법과 제도가 권력의 방호벽이 되어있다면 글자를 알든 모르든, 그 글자가 쉽든 어렵든 그게 무슨 따질 것이겠는가. 419를 다시 데모로 돌려놓고, 교과서 수정과 주문을 주물러 권력이 력사를 왜곡시키고, 국가보안법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로동자 농민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아무부끄럼 없이 법정이 권력과 자본의 손을 들어 주고, 권력이 방송 언론 교육을 장악하고, 부자권력이 자신의 세금 깎아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리윤은 재벌과 가진자들이 독차지하고 고통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갖게 하는 이런 세상에서 한글을 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호소문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쓴다고 해결될까(문자를 모르면 가난하고 억울하게 살 수도 있을 수 있지만 문자를 안다고 가난과 억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는 문자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부족도 수없이 많다. 케이비에스 ‘시청자칼럼’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출연자들이 어디 문자를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겠는가. 이비에스 ‘손끝으로 전하는 사랑’에서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한글을 모르겠는가). 중요한 것은 권력이고 그 권력이 만드는 법과 제도다. 권력의 횡정橫政 아래서는 제 아무리 훌륭한 문자라도 인민의 삶을 안정시킬 수 없다. 한 술 더 떠 인민자신들이 한글해득력으로 세종을 욕보이고 한글을 더럽히고 있기까지 한 현실은 자기부정의 극치다. 수많은 인민들이 널려 빠진 조중동 신문을 읽으며 권자와 부자를 걱정하고 앉았으니 세종과 한글의 불명예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민의 삶을 억울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구조는 강화되었지만 한글은 그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의 바보 인민 만들기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데, 한글이 인민의 자기배반 수단이 되어 있는 현실은 역설이며 비극이다.
나는 한글과 우민화의 역설을 말함으로 해서 세종의 한글 창제의 숭고한 동기와 한글의 우수성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글이 과학적 철학적 미학적 기능적인 면에서 그 어떤 다른 문자가 따라 올 수 없는 독보적이며 자랑스러운 문자임을 확신한다. 나의 안타까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민화의 역설이 일어나는 황당한 현실에 있다. 이는 한글 창제 보급 정신이 미완임을 말해준다. 세종은 처음부터 세계문자박람회나 문자경연대회에 출품하려고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 애민정신 곧 인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한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만들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종에게 중요한 것은 인민의 삶이지 문자 창제가 아니었다. 한글은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한글창제에 부여된 최고의 의미는 인민 삶의 안정과 행복이다. 만약 세종이 한글문맹률이 가장 낮은데도 인민의 삶이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지금 최고권력자가 되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여러 가지 다른 개혁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글상용이 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노력이다. 한글을 활용하여 그런 글을 읽고 그런 글을 쓰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세종의 한글 창제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 제목 속의 ‘문자혁명’에 주목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의미로만 리해했을 때는 그저 당연한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문자 창제에 반대하는 권신들과 싸우는 세종의 외롭고 힘겨운 과정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한글창제는 투쟁이고 혁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문자혁명’은 ‘문자를 혁명한다’는 의미보다는 ‘문자를 통해 인민의 삶을 혁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옳다. 한글창제는 문자 자체의 우수성을 빼더라도 하나의 혁명사업이었던 것이다.
한글창제와 보급에 유교적 통치질서를 강화해보겠다는 의도가 있긴 하지만 세종의 더 깊은 뜻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김’에 있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쉬운 문자를 만든다고 해서 백성들의 어려움이 구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고권력자가 이런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혁명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피지배자가 똑똑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한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한글창제는 역혁명이라 할 수 있다. 혁명은 대체로 아래에 있는 사람, 없는 사람들이 기존의 힘을 뒤집는 것인데 한글창제혁명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신하들이 사대론과 무용론을 내세워 이를 반대했고 최고권력자 세종은 이들과 싸워야 했다. 한글을 창제하는 것과 반대세력과 싸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힘들까. 세종만큼 머리 좋은 천민이 있다 치자. 그래서 그가 한글을 만들고 천민들 사이에 한글이 상용화되었다면 권신들은 어떻게 이 사건(?)을 처리했을까. 세종의 혁명적 위업은 여기에 있다. 한글창제를 오늘의 일로 비겨보면 세종의 한글창제와 보급사업이 얼마나 혁명적인 것인가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지금이 영어상용화 시대인데 어떤 대통령이 한글을 만들고자 하면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몇이나 찬성할까.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400여년이 지나 주시경 선생에 와서 빛을 보게 되었다. 온전히 한글로 한문을 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는 끝내는 권력이 인민의 바람을 이길 수 없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한글이 인민의식을 고양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인민의 권력지향 권력옹호 욕망을 키우는 데까지만 머물러 있고, 그에 따라 우민화가 심화된 게 현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자가 아니라 권력이다(례컨대 지금 이 나라 극우폭력세력은 그들의 왕조를 세우려고 눈이 벌겋다. 왕조의 백성은 똑똑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온갖 우민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교과서, 방송, 언론, 교육 장악과 전교조 공격은 대표적인 우민화 짓거리다. 남는 것은 한글을 아는 우민이냐 모르는 우민이냐는 차이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악용된다는 것 밖에 한글에 붙을 다른 의미는 없다. 이는 곧 한글 창제 동기의 치욕이다). 권력이 인민을 우민화하는 악의를 저지른다면 아무리 세계최고문자라도 소용이 없다. 세종은 우리에게 열쇠를 주었지만 이후 권력은 그것을 잠그는 데만 썼고 인민은 권력에 조종되었다. 지금 인민은 한글은 알게 되었지만 생각하는 기능을 거의 잃어버렸고 권력의 생각안내(가이드라인) 안에서 생각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뜻을 펼쳐 말할 수 없’는 상황도 다 벗어나지 못했고, ‘말해도 소용 없’는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한글 창제 보급 의미를 지금 상황에서 해석하자면 우민화를 극복하고 모두가 고루 잘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하기에 한글은 평등의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한글이 계급의식을 통찰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고 계급구조를 강화 고착시키는 도구에 머물거나 계급과 무관하게 단순히 문자로만 머물 때 한글 창제에 담긴 혁명정신은 사라지고 만다.
주류문자를 한문에서 한글로 바꾸었다면 권력의 주류도 바꾸어 인민자주 인민해방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문자혁명’정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다시 400년이 더 걸리더라도 가야 할 길이다. 한문을 밀어내고 한글을 쓰고 있듯이 불평등을 몰아내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지 껍데기만 얻는 것은 진정한 얻음이 아니다.
2008년 12월 10일
# by | 2008/12/15 09:33 | 잡문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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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엮어갑니다. 시간 내셔서
온한글에 꼭 들려주시고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