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가 대안일 수 있으려면…

 

대안학교가 대안일 수 있으려면…


얼마 앞 ㅇ선생님과 오랜 만에 만났다. ㅇ선생님은 3년 앞에 5년 간 한 곳에서 지냈는데 지금은 대안학교 교감직을 맡고 있다. 박사학위도 대안학교를 주제로 다루어서 지역에서는 대안학교 통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다. 그날 주고 가신 그 학교 소식지를 보면 선생님은 무절제하고 자기모순적인 학교 분위기를 개변시킬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 글을 읽는 나도 그 학교의 그런 분위기와 ㅇ선생님의 그런 의지를 어떻게 봐야할까 동시에 고민이 되기도 했다. 또 그날 ㅇ선생님은 수능원서를 받으러 교육청에 다니러 오신 길이었는데 수능과 대안학교의 관계도 쉽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안학교의 가치와 존재리유 존재양상이 그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안은 원래의 것을 대체할 그 무엇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대안이 원래 그래야 하는 지위나 역할을 옹유하고 있다는 말인데 참으로 역설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 대안학교는 주류가 되지 못한다. 올바른 것은 비주류에게 있고, 지금 주류는 온당하지 않은 것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주류가 원래 그래야 하는 가치를 수행하지 않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안학교가 주목받는 만큼 이 나라 교육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대안학교라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학교가 옹유하고 있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경쟁과 시험으로부터 령혼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대안학교는 경쟁과 시험으로 가득 찬 제도권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과 제도권학교로부터 거부당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 아이들은 학교라는 훈련소에서 자유를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때 자유는 평등과 정의을 포괄하는 천부적 권리다. 제도권학교에서는 그 자유를 입시제도와 그 입시에 핑계를 댄 훈육적 규칙을 내세워 강탈하고 억압한다. 따라서 대안학교가 대안학교일 수 있으려면 수능시험에 길들여지지 않아야 하고 천부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ㅇ선생님은 도내 최초 공립대안학교 설립에도 깊이 관여하고 계시기도 했다. 제도권학교 부적응 아이들을 모으려고 시작했다는데 선생님이 방향을 틀어서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공립대안학교와 대안학교 근무 경험 교사를 늘려가야 한다고 하신다. 일견 그런 듯 해보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도권교육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다 수용할 예산을 과연 교육부나 도교육청에서 마련할 수 있을까. 공립대안학교에서 입시준비하면 아이들의 령혼이 부서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가. 진실로 당국의 련민이 순수하다면 공립대안학교를 만드는 것 보다는 차라리 입시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전투에서 죽거나 다치는 병졸이 저렇게 많은데 기껏 야전병원 몇 개 지어 치유할 수 있겠는가. 겉보기에 멀쩡한 병졸들이라고 해서 성한 것도 아니다. 정말 병졸들이 불쌍하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전투를 그만두어야 한다. 


규모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안학교, 학교 본연의 학교는 우선 규모가 작아야 한다. 교사 한 사람이, 학교 한 곳이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규모는 작을수록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규모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입시를 중심에 둔다면 대안학교가 될 수 없다. ㅇ선생님께 학급규모를 물어 본 것도 이런 리유에서였다. 선생님은 유에스에이의 례를 들면서 그곳 큰 학교에는 한 학교에 교장이 세 명 네 명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제도권학교, 대규모학교가 병증을 일으키고 그에 따라 대안학교, 소규모학교가 일어나는 것이 모두 입시의 멍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규모가 작아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입시준비목적이 제거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규모가 작은 대안학교라도 대안학교가 될 수 없다. 관리자를 늘려 산술적으로 작은 학교를 만드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입시제도로부터 자유로운 대안학교는 어떠해야 할까. 아니 어떠해야 한다는 틀이 있을 수 있는가. 이 부분과 관련해서 ㅇ선생님의 고민은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위치도 립장도 아니지만 굳이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대안학교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의 자유의지로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유와 자유의지에 대한 천착과 궁구, 토론을 통해서 구성원간의 자발적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ㅇ선생님이 지적하는 학교 아이들의 지금 모습이 자유일 수도 있고 무질서일수도 있다.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질서가 구속일 수 있고, 무질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지금의 자유가 피해를 일으킨다고 여길 수도 있다. 내가 그 학교에서 일한다고해도 그 학교의 자유와 무질서를 가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말할 수 있다면 대안학교는 과정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 학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일에 구성원 모두가 나서는 일 자체가 대안학교의 미풍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관리자 일방이 주도하는 개변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선이라 하더라도 대안학교의 존재방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밥자리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대안학교에서는 대학을 몇 명이나 가냐고 물어왔다. 이 때 대학은 서울대를 가리킨다. 내가 말했다. “대안학교는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 곳 아이들은 대체로 대학가는 것에 목매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부마저 시내 학원에 다니고 입시를 준비합니다. 또 일부 대안학교는 입시준비와 결별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안학교의 대안성과 가능성은 그 만큼 상쇄됩니다. 이 나라에서 대안학교의 독립 수준 검증도 이를 지표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몸과 정신이 따로 놀고, 정신과 정신이 따로 논다면 대안학교의 대안학교됨은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2008. 11. 25.

by 롱산 | 2008/11/25 12:09 | 잡문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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