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6일
우리말글 위기와 자본주의
우리말글 위기와 자본주의
얼마 전에 나는 내 글에서 한글날을 맞아 우리가 살려야 하는 것은 한글과 함께 우리말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가령 대통령이 ‘잡세어링’이라고 말한 것을‘job sharing’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잡세어링’이라고 쓴다면 우리글로 적어 한글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눠 같이 일하기’라는 우리말은 지키지 못한 것이 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도 마찬가지다. 한글 지키기는 우리 말 지키기에 견줘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말을 살리는 것은 우리글을 살리는 것 보다 더 어렵고 중요하다.
우리가 우리글말을 죽이는 일은 이미 일상 깊숙이, 넓게 벌어지고 있다. 직업일람표라고 하면 될 것을 ‘job map’이라 하는가 하면, 진주 실내체육관은 ‘Jinju Arena’라고 해야 속이 시원해지는 모양이다. 상품이름, 회사이름, 가게이름은 그 첨병이다. 옷, 자동차, 아파트, 음식 등의 거의 모든 이름이 외국어로 되어 있어 굳이 례를 들 필요조차 없고, 지역의 무림제지는 ‘무림페이퍼’로 이름을 바꾸었다. OO C&G같은 회사는 뭐하는 곳인지 이름만으론 잘 모르겠다. 공공기관도 덩달아 나서고 있다. 경남도는 ‘feel Gyengnam’이라 하여 기관자체를 상품화 하고 있고, 어떤 지자체에서는 금연운동 이름을 ‘스모크프리’로 붙여 펼치고 있다.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한 문장에 한 단어 정도는 외국말을 쓴다. 휴대폰, 자동차 키, 통장 남바, 체크 같은 말은 시골의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도 곧잘 쓴다. 개점 개업은 이제 ‘오픈’에 저만치 밀려나 있고, 축구단은 거의가 ‘에프씨’로 바뀌었다. ‘투마로우 위드 유’, ‘부라보 유얼 라이프’, ‘유 퍼스트’ 같이 영문을 통으로 쓰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말글을 죽이는 것에는 여러 가지 리유를 찾아 볼 수 있다. 무심함(습관), 주체의식 모자람, 과시욕 등이 그것인데 아무래도 가장 큰 리유는 알림(광고)인 것 같다. 이는 우리가 묶여 있는 체제가 자본주의라는 사실과도 깊은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는 그럴듯한 겉모습이 내실보다 중요하며, 많이 알려 하나라도 더 많이 팔아먹는 것이 생존방식이다. 심지어 자신의 몸도 비싼 상품으로 만들어 돈 버는 수단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는 돈을 버는 가장 강력한 치장이 된다. 그럴듯하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주의 들여 보면 자본주의가 우리말글을 죽이는 가장 큰 적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미국식 자본주의가 되다보니 영어가 가장 큰 경쟁 상대가 된다. 자본주의에 의식과 생활을 지배당한 지금, 문자와 언어가 온전하길 바랄 수 없다. 돈의 힘에 따라 문자와 언어도 바뀐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알고 일부러 우리말글을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부지불식간에 우리 자신이 우리말글을 죽이는 적극가담자가 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서강대학교 영어학습 사업본부(에스엘피라고 하더라)에서는 ‘영어를 가르치겠습니까? 언어를 가르치겠습니까?’라고 물으며 생각부터 영어로 하는 교육을 시키겠다는 야심찬 다짐을 담은 광고를 내 보내고 있다. 대통령은 영어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고, 학생들은 영어로 립신출세하겠다고 해대니 우리글 우리말이 직면한 내부공격은 갈수록 무서워지고 있다.
표기를 한글로 하느냐 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말 자체를 우리말로 할 것이냐 아니냐는 더 더욱 중요하다. 형편에 따라 우리말글과 다른말글을 같이 표기하고 같이 쓸 때도 있을 테지만, 뭘 더 우선해야 할지는 기본적으로 생각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말글을 죽이는 커다란 배경이 자본주의 체제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돈이 사람 숨까지 앗아가는 이 무시무시한 체제에서 우리말글이 그 자본주의 위력 앞에서 스스로 살아남기를 바랄 수 없다. 자본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우리말글도 하나 둘 씩 사라진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돈에 대한 무한욕구가 우리말글을 죽이는 커다란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해 보자. 자본주의에 말글이 침식당하는 것을 대세나 흐름으로 받아들여 무감각하게 살아가다보면, 우리말글도 온데간데없이 휩쓸려가고 없을 것이다.
2009. 11. 6.
# by | 2009/11/06 16:44 | 잡문 | 트랙백 | 덧글(0)



